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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안드레명상 날짜 : 19-10-17 03:25     조회 : 37    
제149호 (2019.10.1발행) - 일본의 신사 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던 주기철 목사의 순교

일본의 신사 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던 주기철 목사의 순교

한국 기독교 역사에 순교자의 반열에 그 이름이 선명하게 빛나는 사람을 든다면 고 주기철 목사를 들 수 있다. 그가 순교한지 금년으로(2019년) 7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한국의 기독교인이라면 그가 남기고 간 순교자의 위대한 생애를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호는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일사각오 순교의 길을 선택했던 고 주기철 목사의 출생에서부터 순교까지 생애를 정리해 본다. 여기에 전개되는 내용은 1991년 5월 6일 주기철 목사의 막내 아들로서 당시 극동방송 부사장이었던 주광조 장로께서 필자에게 알려준 증언과 자료를 정리한 글이다.
경남 창원군 웅천의 소년이 왜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로 갔을까?
주기철 목사는 1897년 11월 25일 경남 창원군 웅천면 북부리에서 태어나 네살 때부터 아버지 주원성 장로가 세운 웅천교회를 출석하면서 그 곳에서 성장했다. 그런데 주기철이 상급학교를 진학할 때 그의 운명을 바꿀 사건이 생겼다.
즉 부산이나 마산의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멀리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五山) 학교로 가게된다. 그 이유는 춘원 이광수 때문이다.
즉 당시 오산학교의 설립자요, 민족의 선각자인 남강 이승훈이 105인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수감중이라 이광수가 오산학교 교장 서리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광수는 오산학교의 우수한 학생 모집을 위해 전국을 순회하던중 부산에서 마산으로 가다가 우연히 웅천이란 곳에 들렸다.
춘원 이광수는 1906년 도산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투철한 민족 의식을 갖게된 계몽 사상가 였다.
청중들은 열변을 토하는 이광수의 연설에 완전 매료되었다. 특히 이광수가 이날 강연에서 오산학교의 존재 이유를 강열하게 외쳤다.
즉 오산학교는 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질 위대한 애국자를 길러내는 밑거름이 될 것이며, 바로 이

나라의 운명은 앞으로 오산학교 학생들의 어깨에 달였다고 외쳤다. 그런데 이날 강연장 한쪽 모퉁이에 앉자 이광수의 연설을 듣고 있던 한 소년의 가슴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즉 당시 일제의 탄압과 망국의 서러움이 서서히 분노로 끓어오르면서 이 소년은 두 주먹을 뿔끈 쥐었다. 바로 주기철 소년이었다.
주기철은 지체없이 오산학교 진학을 위해 평안북고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를 찾아갔다.
특히 오산학교가 주기철 소년에게 강력한 민족 의식과 신앙 정신을 심어준 사람이 유영모 선생이었고 그 다음이 고당 조만식 선생이었다.
『오산 70년사』에는 이런 글이 기록되었다.
<남강 이승훈은 박애와 사랑으로, 고당은 인내와 정성으로, 남강이 오산의 얼이요 겨례의 스승이라면 고당은 오산의 주춧돌이요 겨례의 등불이다.>… 한편 춘원 이광수는 오산학교 학생들에게 직접 성경 교육에도 열성을 다했다. 그러나 그렇게 열성을 다해 학생들을 지도했던 이광수의 신앙생활에 변절이 오기 시작했다.
특히 톨스토이 사상의 심취와 자연주의 문예 사조의 유혹에 빠지면서 이광수는 드디어 친일문학가로 돌아섰다.
춘원 이광수의 이같은 사상은 바로 기독교적 민족 구원의 투철한 정신으로 무장된 당시 오산 학생들도 흔들리게 했다.
뿐만 아니라 춘원은 학생들의 예배까지도 무관심하면서 학생들의 신앙생활은 서서히 식어가는 형편이 되었다. 그러나 오산의 주춧돌이요 겨례의 등불로 추앙받던 고당 조만식의 민족주의 교육 사상이 오산 학생들을 다시 “똘똘 뭉치게 했다. 고당은 민족주의 전개에 특히 민족 경제 자립을 위해서는 물산 장려 운동만이 이 민족이 사는 길이라고 외쳤다. 고당 조만식이 어느날 삼일 예배(수요예배)때 학생들 앞에서 물산 장려와 민족 자립 경제를 외치다가 갑자기 양복을 벗고 또 모자를 벗더니” “우리 나라가 독립하는 날까지는 나는 절대 양복을 입지 않겠소!” 하면서 양복과 모자를 갈기 갈기 찢어버렸다. 그날 이후 고당은 짧은 무명 두루마기에 말총 모자를 썼으며 신발도 항상 짚신을 신고 다녔다. 조만식의 당시 모습은 후일 조선일보 사장 시절 사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오산학교 학생들은 그때부터 고당을 조선의 간디라고 불렀다.
참고로 2001년 12월 29일 인도 간디의 친손녀 바타차지가 전 세계적으로 간디 상 후보를 찾아 다니던 중 한국을 방문했다. 이는 고당 조만식이 간디의 철학과 너무나 닮았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한편 1916년 19세의 나이로 오산학교를 졸업한 주기철은 고당 조만식과 남강 이승훈의 권유로 연희 전문 상과에 진학한다. 주기철은 본래 신학을 희망했는데, 고당과 남강 두분께서는 꼭 상과 진학을 권유했다.
두 선생님의 뜻을 깨닳은 주기철은 “예 알겠습니다. 헐벗고 굶주리는 이 민족을 위해서 상과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연희전문에 들어온지 꼭 1년만에 주기철은 평소 늘 고통을 주었던 안질이 악화되면서 공부는 중단되고 그는 부득이 고향 웅천으로 내려갔다. 고향에서 우울한 일과를 보내던 주기철의 마음을 더욱 괴롭힌 것은 당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교회 탄압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한국의 청소년들을 정신적 타락으로 유인하기 위해 도시마다 홍등가(사창가)를 설치 공창제를 운영했다.
또한 농민들에게 담배와 아편 재배를 적극 지원했다. 이러한 일본의 무서운 정책과 계략을 분쇄하기 위해 당시 길선주 목사는 국민들에게 연설과 설교를 통해 담배와 술을 절대 먹지 말 것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이에 당황한 일본은 조선 총독부 수입증대에 반항하는 자라며 길선주 목사를 소요죄로 구속했다. 나라를 빼앗긴 국민들은 민족의 진로를 찾지 못하고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때 청년 주기철도 슬픈 현실에 직면한다.
즉 신앙과 인격적으로 그토록 존경했던 스승 춘원 이광수가 1917년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의 글을 공개했을 때다. 오산 학생때 춘원에게서 신앙교육을 받았던 주기철 청년은 스승의 변절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이광수의 기독교 비판이 그를 따르던 수많은 제자들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주었는지를 증언한 사람이 지금은 고인이 된 숭실대 안병욱 교수였다. 안병욱 교수는 자신이 영문학을 배운 동기는 춘원 이광수 때문이라고 방송 대담에서 밝혔다. (1993년 5월 15일) 안병욱 교수는 이날 방송에서 그토록 존경했던 그의 스승 이광수가 감옥에서 순교하지 못하고 일본 제국 주의에 머리를 숙인 것에 대해 천추의 한을 남겼다고 했다. 만일 춘원 이광수가 남강 이승훈의 고귀한 뜻과 오산학교의 기독교적 정신으로 주기철 목사처럼 감옥에서 순교했더라면 오늘날 춘원을 보는 역사의 시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안병욱 교수는 “내가 그토록 존경했던 선생님의 그 주옥 같은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여 선생님을 꼭 노벨문학상을 받게 해 드리겠다는 그 결심 하나로 학생시절 영문학 공부에 밤을 세웠다.”라고 회상했다. 만일 춘원이 친일문학가가 되지 않고 빼앗긴 그 역사의 들판에 확실한 신상의 씨앗만 뿌리고 갔다면 오산학교 출신의 그 기라성 같은 수많은 제자들에 의해 춘원을 바라보는 시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청년 주기철을 목회자로 세우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주기철이 만 20세 되던해, 서울 정신여학교를 졸업한 안갑수와 결혼하여 4남매를 두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인 안갑수는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주기철은 부모님과 4남매를 혼자서 키우며 2년을 버티다가 결국 오정모와 재혼을 하게 된다.
오정모는 평양 정의여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마산 의신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신앙이 확고 부동한 신실한 믿음의 여인이었다.
이 오정모 여인이 훗날 주기철을 순교의 반열로 인도하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빛나는 이름을 남기에 된다. 한편 주기철에게 본격적인 신학을 공부하게된 계기가 생겼는데 그것은 1920년 3월 30일자 동아일보 기사 때문이었다. 즉 이날 동아일보는【부산진 교회에서 있었던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에서 이적이 일어났다】라고 보도했다.
주기철은 김익두 목사가 다시 마산 문창교회에서 부흥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흥회 장소로 달려갔다. 김익두 목사의 불을 토하는 것 같은 이날 부흥회에서 주기철은 처음으로 뜨거운 성령 세례를 받고 깜짝 놀랐다. 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한 주기철은 지체없이 평양 장로교 신학교에 입학 본격적인 신학공부를 하게 된다.
그후 1926년 1월 1일 부산 초량교회 목사로 부임 본격적인 주기철 목사의 목회시대 막이 올랐다.

주기철 목사와 교회 주일학교

부산 초량교회 목사로 부임한 주기철 목사는 앞으로 교회의 허리가 될 주일학교를 빨리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급선무로 정했다.
그래서 그는 주일학교 성경공부를 체계적으로 완벽하게 진행시켜 이 학생들을 앞으로 이 나라의 기독교 신앙의 기둥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먼저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소명 의식을 갖게 했다.
즉 이를 위해 주일학교 교사들은 1차적으로 새벽기도 참석을 꼭 의무화시켜 주일학교 교사 직분은 하나님이 내려준 천직으로 생각게 했다.
이렇게 하여 초량교회 주일학교 운영방식이 전국 교회로 소문이 퍼져 나갔다.

주일학교 교사 직분을 위해 장관직을 사임한 양성봉 장로

주기철 목사의 주일학교 육성 발전 정책으로 드디어 초량교회 주일학교가 그야말로 신앙의 황금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그 첫 열매가 양성봉 집사였다. 양 집사는 초량교회 주일학교 교사와 교장을 거쳐 1930년에 장로 장립을 받았으며, 1946년 부산시장 1949년 경남도지사 1953년 농림부장관이 되었다. 문제는 장관이 된 후에도 초량교회 주일학교 교사직분을 계속 수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많았다. 양성봉 장관은 자신의 장로, 장관직 보다 초량교회 주일학교, 교사 직분이 훨씬 우선시되는 그야말로 가장 훌륭한 직분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일학교 교사직을 수행하기 위해 주일마다 서울, 부산을 왕복하는 일이었다.
즉 토요일이 되면 근무를 마치고 주일학교 학생들 성경공부 준비물을 가방에 넣고 부산행 밤차를 탄다. 요즘 같은 고속열차가 아닌 12시간을 달리는 완행열차다. 이 완행열차가 아침에 부산역에 도착하면 양성봉 장관은 셩경공부 준비물이든 낡은 가방을 메고 초량교회로 향해 뛰기 시작한다.
그 시절 버스나 택시가 지금처럼 빠르게, 편하게 탈때가 아니었다.
주일학교의 올망졸망한 학생들 얼굴을 보며 성경공부를 할 때는 밤새 열차에 시달렸던 천근만근 고단한 몸도 펄펄 날것 같았다.
성경공부가 끝나면 학생들의 인사를 받으며 그는 다시 농림장관직을 수행하기 위해 다시 서울행 야간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렇게 힘든 주일학교 교사직을 수행하는 양성봉 장관에게 초량교회는 너무 미안해서 “장관님 이제 주일학교 교사직은 그만두고 장관직만 하시죠?” 교회의 권유를 받은 양성봉 장관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초량교회 주일학교 교사직과 장관직, 이중 어느 하나를 분명 선택해야 할 중대 기로에 섰다.
양성봉 농림장관은 어느 토요일날 당시 경무대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섰다. 그는 아무 말없이 농림장관 사임서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드렸다.
이승만 대통령이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왜 사임하는지” 양성봉 장관은 “예, 각하 장관직을 수행하다 보니 우리 초량교회 주일학교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관직을 그만두고 주일학교 교사직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이 기상천외한 장관직 사임 이유를 듣고 난 이승만 대통령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 사람아 지금 남들은 장관 한번 해먹겠다고 돈 보따리를 싸들고 설친다는데 자네는 주일학교 교사 선생님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그런데 나 한가지 부탁좀 해야겠어, 나도 교인인데 떠나는 마당에 당신은 장로니까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나 좀 해주고 떠나게? 이승만 대통령은 갑자기 백발의 머리를 양성봉 장로에게 불숙 내밀었다. 순간 양성봉 장로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기도지만 그래도 감히 대통령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양성봉 장관은 대통령을 계속 머리를 숙이게 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존엄을 무시하는 불경죄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양성봉 장관은 크게 용기를 내서 백발의 대통령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한 기도를 해주었다.
장관 사임 소식은 즉시 교회에도 알려져 주일날 아침 부산역 광장에는 초량교회 주일학교 전체 학생들이 다 나와서 “양성봉 선생님 만세”를 외치며 찬송가를 힘차게 불렀다. 양성봉 장로는 이 감격을 참지 못해 결국 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주일하교 학생들이 신앙적으로 올바르게 성장해야만 이들이 장차 나라의 올바른 일꾼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주기철 목사의 일관된 신앙 철학이다. 당시 초량교회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주기철 목사의 “주일학교 교사직분은 바로 하나님이 맡긴 천직임을 항상 명심하십시요”라는 말씀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한편 주기철 목사는 별도 성경학원에도 출강하여 특히 청년들에게 성경공부를 통한 신앙의 뿌리를 깊게 내리라고 강조했다. 이때 학원 수강생 중에는 순교자 손양원, 이정심, 전재선, 박손혁 그리고 초량교회 양성봉, 구영기 등이 있었다.
한편 1990년대 중반 미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미국을 움직이는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당신이 오늘날 출세를 한 배경”에 대한 설문지를 돌렸다.
응답자 95%가 자신이 어린시절 교회 주일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라고 했고 나머지 5%는 대통령과 평소의 인과 관계 때문이라고 했다.
참고로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는 인물이 카터 전 대통령이다.


카터는 대통령 선거일 단 하루전날 모든 선거 유세를 취소하고 그가 맡고 있는 교회 주일학교를 찾아갔다. 즉 주일학교 교사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수백만표가 열광하는 투표전날, 최고의 황금 유세 연설을 포기하고 그는 주일학교 학생들 앞에서 성경공부를 지도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뉴스로 보던 지지자들이 한숨을 토해냈고 카터의 선거 참모들은 다된 선거 망쳤다고 책상을 치며 울분을 토했다. 또한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일제히 카터의 낙선을 조심스럽게 관측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일학교 교사직분을 성실히 수행한 카터를 미국 대통령 자리에 앉게 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깨우쳐준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에 잊을 수 없는 비화가 되었다.

글: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교회 협동장로)

다음호 예고 (150호)
평양 산정현 교회에 새로 부임한 주기철 목사는 일본의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일본은 주 목사를 네번이나 구속시키면서 신사참배 찬성을 회유했지만 끝내 거부당했다. 주기철 목사는 4년간 감옥생활에 온갖 고문을 당한 끝에 47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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