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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3호 (2003.6.1 발행) - 불멸의 여류작가 故 임옥인 권사의 위…
  글쓴이 : 안드레명상 날짜 : 07-06-02 13:23     조회 : 3561    
본 내용을 저자의 동의없이 무단으로 전제 또는 복재, 살포시는 법의 저촉을받습니다.
 
 
불멸의 여류작가 故 임옥인 권사의 위대한 생애
 
 
1911년 함경북도 길주에서 태어난 임옥인은 국민학교 5학년 때 오빠의 손을 잡고 교회에 처음 나간 것이 그의 인생의 운명을 바꾸게 된 것이다. 17살 영생고녀 때 주일학교 반사가 되면서 그는 장차 교사가 될 것을 결심하게 된다. 주일학교 반사가 되면서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지혜와 총명을 얻게 되고 영생고녀를 수석으로 졸업하자 주위에서는 그를 일본의 명문 사범학교인 나라 사범학교에 유학을 가게 했다. 1931년 12월 유학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왔을 때 그의 옷차림은 까만 색 통치마에 횐 저고리를 입었으며 고무신이 없어 짚신을 신고 와서 시험을 치렀다. 시험 결과 당시 조선 전체에서 4명을 선발하는데 그중에 임옥인이 합격했다. 그후 일본 나라 사범학교를 졸업과 동시에 그의 모교인 영생 고녀에서는 그를 교사로 채용했다. 그리하여 평소 그렇게도 소원했던 교사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11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문학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교사로서 긍지와 정열을 다바쳐 열심히 근무하던 중 그는 생각지도 않은 폐결핵으로 인해 정든 교단을 떠나게 된다.. 참고로 그의 일평생에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를 알아봤더니 7살때 복막염에서부터 맹장염, 뇌졸중 등으로 인해 무려 11번의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폐결핵으로 교단을 떠나 착실히 요양을 한 결과 폐결핵이 완치되어 이번에는 산세가 준수한 장백산을 병풍처럼 둘러싼 원산의 루시 여고에서 다시 교편을 잡았다. 하얀 파도가 유리 구슬처럼 밀리고 진분흥 해당화가 무더기로 피어나는 원산의 명사십리 바닷가는 그의 건강 회복에 절대적인 휴양소가 되었다. 특히 새벽녘과 저녁 노을이 전개될 때마다 은은히 들려오는 교회의 종소리는 임옥인의 신앙을 더더욱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그때마다 그는 '하나님, 이 아름다운 대자연속에서 나의 건강을 보살피시고 나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기도와 묵상에 잠기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에 따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그의 첫 작품인 소설 봉선화가 집필된다. 이 봉선화 작품이 당시 우리나라 문인들의 문단 등용의 유일한 관문인 '문장'지에 발표가 됨으로써 그는 하루 아침에 작가가 된 것이다. 이때 같이 출발한 문인들이 소설의 김정한, 시에는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이었다. 이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등장하여 필봉을 휘두르자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 문인들의 유일한 문예지인 '문장'지를 폐간시켰고 뒤이어 1937년 2월 11일 창씨개명과 한글말살정책을 단행했다. 우리의 문인들은 그래서 벙어리의 땅에서 살게되고 민족정기의 횃불이 될 붓이 꺾이자 조국은 암흑시대로 들어갔다. 특히 한글 교육을 못하게 되자 임옥인은 교사직을 미련없이 청산하고 시골로 들어가 한글 야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삼수갑산 대오천이란 곳으로 떠난다. 그러나 대오천으로 가는 도중에 당시 전국을 휩쓸었던 장티프스 전염병에 걸려 사망 직전까지 다다른다. 다행히 길죽교회 권성훈 목사를 만나 권목사의 뜨거운 기도로 멈췄던 맥박이 다시 소생하는 기적을 체험,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다.
그래서 임옥인은 이곳 대오천에서 가정야학교를 설립하여 수많은 문맹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것도 8개월만에 좌절된다. 즉, 해방과 더불어 북한 전역에 공산당의 정책이 실시되는데 이것은 일제 치하보다 더 무서운 음모가 싹트기 시작했다.
 
자유를 찾아 단신 철남하는 처녀작가의 용맹
 
당시 상황이 너무나 급박해서 임옥인은 고향의 부모형제에게 작별인사도 못하고 급히 월남길에 나섰다. 1946년 38선을 넘어 경기도의 한탄강을 건너 동두천에 도착했을 때 그의 발목은 피멍으로 얼룩졌다. 일가친척 하나없는 서울에서 임옥인은 가난과 고독과 부모님에 대한 외로움으로 슬픈 나날을 보냈다. 당장 방을 구할 돈이 없어 남의 창고나 처마 밑에서 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천신만고의 고생속에서도 작품활동만은 쉬지 않았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힘이 바로 신앙이었다. 창덕여고 교편생활을 하면서도 당시 박순천 여사가 발행하던 부인신보의 편집차장일을 수행했다. 그리고 뒤이어 경향신문을 거쳐 미국 공보원의 번역일을 하면서 창작의 붓은 마르지가 않았다. 임옥인의 작품 중에서 '월남전후'는 그의 자서전과 같은 수기로서 이 소설로 그는 아세아 자유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뒤이어 조선일보에 '젊은 설계도' 소설이 연재되었는데 곧 영화로 만들어졌다(최무룡과 문정숙 출연). 그의 소설이 연재되면서 신문발행 부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는데 이번에는 동아일보에 '힘의 서정'이 연재되었다. 문학과 신앙을 겸비한 아름다운 처녀작가는 당시 결혼이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을 만큼 바쁜 나날이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는 이미 혼기를 넘긴 40 이 되어 버렸다.
 
40세의 노처녀에게 28세의 총각이 사랑을 고백한다
 
임옥인에게 정신적 지주가 될 반려자가 용감하게 청혼을 제의했다. 그분이 바로 당시 소년잡지의 주간인 소설가 방기환씨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나이가 너무나 차이가 나서 쉽사리 결합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임옥인은 방기환의 끈질긴 청혼과 깊고 큰 진실한 그의 사랑이 임옥인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고 나서는 신앙의 도움으로 결단을 내렸다. 28세의 총각과 40세의 처녀는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그들은 행복의 성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 갔다.
1960년 임옥인의 나이 50을 넘기면서부터 그의 작품은 개화기로 들어선다. 그리고 사회활동무대는 더욱더 넓어진다. 1970년에 건국대학교 가정대학장이 되었고 74년부터 한국 여류문학인협회 회장, 75년에는 YMCA기독교 부인회장, 그리고 예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그가 봉사하던 왕십리교회에서는 임옥인을 권사로 장립 한다.
 
행복의 화원에서 불행의 늪으로
 
1975년 그해가 마지막 저물어 가던 12월 23일 행복했던 그의 생활에 어둠의 그럼자가 찾아든다. 바로 그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국제펜대회 참가 후 귀국해서 얼마후 유성 온천에서 개최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유성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구급차가 대전을 지나기도 전에 이미 그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서울행을 포기하고 대전의 큰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회생불능이란 판정이 났다. 시체나 다름없는 그의 몸은 다시 서울 명동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의료진이 필사적인 최후수단을 다 시도했으나 회생은 되지 않았다. 남편 방기환'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내의 손을 잡고 통곡의 기도를 했다. 방기환은 갑자기 특별한 서원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 나의 생명을 15년을 단축시키고 대신 할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십시오‥‥‥‥ (두 부부는 서로가 할배, 할매라고 불렀다) 내가 15년을 덜 살고 하나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대신 할매를 15년만 더 살다가게 해 주십시오!' 이 안타까운 기도를 난생 처음 듣고 있던 의사도 간호사들도 같이 울고 있었다. 마침 이날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이었다. 명동성당의 웅장한 저녁 종소리가 병실 창문을 울리고 있었다. 방기환의 절규에 가까운 기도소리와 성당의 장엄한 종소리는 마지막 생과 사가 교차하는 갈림길에 누워있는 임옥인의 귓전을 강타했다. 사람이 운명할 때 제일 먼저 기능을 상실하는 것이 청각이라고 한다. 의식불능 상태의 임옥인은 그의 귓전에 메아리치고 있는 한 남자의 울음소리와 교회의 종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마지막 최후의 힘을 다해 몸을 쥐어 틀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입가에는 미동이 일기 시작했고 의식이 서서히 회복되어 갔다. 마치 긴잠을 자고 난 어린아이의 얼굴과 같았다.
의식은 회복되었으나 전신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서 임옥인은 오직 하나님께 모든것을 의지하고 그야말로 눈물이 마르도록 기도를 했다. 임옥인의 작품 중 '최선을 드립니다' 옛세이집은 바로 이때 하나님께 매달리며 매일 매일 기도한 내용을 주제로 한 글이다.
 
제2의 부활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기적
 
1976년 1월 26일 밤 임옥인의 자택에서는 그가 다니던 교회의 어느 권사가 찾아와 임옥인을 위한 간곡한 기도를 끝내고 그 권사는 방안이 진동할 정도의 큰 음성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제 털고 일어나라 !' 그 말이 떨어지자 임옥인은 아멘 ! 을 크게 외치고 순간 입술을 깨물면서 '믿사옵고 일어섭니다!' 이 한마디의 말을 하고 누워 있던 자리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벽에 손을 대고 방안을 걷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가족들은 일순간에 일어난 상황에 처음에는 겁에 질렀다가 틀림없이 혼자서 걷기 시작하는 임옥인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서로가 뒤엉켜 펄쩍펄쩍 뛰며 울부짖었다. '전능하신 하나님 ! 인간의 생사회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 오늘 하나님이 보여 주신 이 기적을 평생토록 증거하고 살겠습니다 ! ‥‥‥'
 
하나님을 향한 마지막 봉사
 
그후 12년의 세월, 임옥인은 이 기간을 임옥인의 제2의 황금기라고 '나의 이력서'에서 기록하고 있다. 다소 불편한 몸이지만 그러나 다시 붓을 잡을 수 있고 또 혼자서 가까운 곳에는 외출도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감사와 행복과 희락이 충만, 충만한 세월이 흘러간다. 그의 신앙의 뿌리가 되었던 서울 왕십리 교회는 부활절과 성탄절에만 나가고 지금은 가까운 동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어느날 임옥인의 이와같은 건강의 사정을 모르는 개척교회 목사가 심방을 와서 임옥인에게 구역장을 맡아 좀 열심히 뛰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임옥인은 속으로 웃으면서도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두말없이 승낙을 하고 비록 성치못한 몸이지만 구역 예배를 금요일마다 인도해 나갔다.
 
인생의 황혼에서 되돌아 본 위대한 삶
 
1992년 2월 8일 필자는 임옥인 여사의 신앙 얘기를 '안드레 명상'에 게재하기 위해 자료 수집차 둔촌동 그의 자택을 꼭 5년만에 다시 방문을 했다. (1987년 5월 인간만세 방송 이후) 당시 81세의 임옥인 노 원로작가는 5년만에 '다시 만난' 필자에게 딸기와 차를 대접하면서 석양에 젖은 인생의 무상함을 환담하는 중에 할배 (방기환)얘기를 전해 주었다. 현재 할배가 병원에 입원한지 오래된다고 한다. '내 생명 15년을 단축하고 대신 우리 할매를 15년 더 살게 해 주십시오'했던 지난날의 그 기도 얘기를 하면서 임옥인 여사의 얼굴에는 어느덧 수심이 쌓인다. 이 노부부 작가의 슬하에는 자식이 없다. 그러나 자식이 없다고 조금도 후회하는 기색이 없다. 이미 왕십리의 13평짜리 집에서 초라한 생활을 하면서도 길거리에 방황하는 고아들을 길러냈다. 그 고아들이 오늘날은 장로에서부터 목사, 작가, 교사가 되었다. 특히 한 살인범 전과자에게 9년간을 면회하면서 신앙을 심어주었다. 그가 감옥에서 출소하는 날 바로 집으로 데려와 어머니로서 모정을 쏟으며 같이 생활을 했다. 그 살인범 전과자는 지금 자립을 해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임옥인 여사가 이 살인범 전과자를 친자식과 같이 9년간을 돌봐준 이면에는 이유가 있다. 임옥인 여사는 자신을 죽음의 용광로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께 그 구원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수많은 시간을 두고 생각한 끝에 결정한 것이 바로 이 살인범 전과자를 친자식과 같이 돌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또한 임옥인 여사에게는 6명의 출가한 딸이 있다. 이들 역시 자신의 손으로 길렀고 공부를 시켰다. 유명한 디자이너에서부터 멀리 중남미에 선교사로 나간 딸도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딸 하나가 시집가서 폐암으로 죽었는데 이 딸 때문에 항상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임옥인 여사는 20여권의 책을 냈는데 이중 반 이상이 신앙과 관련된 책이며 특히 '젊은 설계도'는 최무룡, 문정숙이 출연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그외 소설은 방송국의 연속 낭독으로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현재도 주 2회 기독신보에 자신의 신앙 칼럼이 연재되는데 원고료 3만원을 받으면 거기서 무조건 11조를 꼭 교회에 바친다고 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4만 교회의 천만 교인들이 1년에 1번은 꼭 임옥인 여사가 1967년에 작사한 찬송을 부르는데 그 찬송이 311장이다.
즉, 추수감사절 때 부르는 이 찬송은 추수의 기쁨과 감사를 표현한 것이다. 이 찬송 가사를 작사할 때 특별한 동기는 없었고 오직 자신이 그 수많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생존의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활의 전부가 감사이기 때문에 작사된 것이라고 했다. 특히 감사에는 눈물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눈물의 불모지에는 인생의 사랑이 싹틀 수도 또 사랑이 자랄 수도 없다고 했다. 또한 여자에게 눈물은 원자탄보다 더 큰 무기라고 했다. 눈물은 생명의 아름다운 언어로서, 이슬의 단비로서 흐르고 솟아 넘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가뭄으로 갈라진 여름 논바닥 같은 우리 인생의 논밭을 한없이 적셔주어야 한다고 했다. 성경 마태복음 5장 산상보훈에서도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다.
 
청년에게 주는 글
 
끝으로 필자는 임옥인 여사에게 한가지 부탁을 드렸다. 이 '안드레명상'은 3군 사관학교 생도들과 군인들 그리고 청년들층의 애독자가 많다고 했다. 이 청년층의 사람들에게 들려줄 얘기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다운 인간의 길을 걸으며 적어도 보람있는 생애를 살았던 사람들은 다 물질에 대하여 청렴했으며 정신력이 물욕을 지배하였던 것이다. 젊은이에게 있어서 저축이 무엇인가. 나처럼 인생을 많이 살고 되돌아 보면 젊은이들에게 긴급하게 일러주고 싶은 것은 공신력이다.
속담에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곧이 안 들린다'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신용없는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 맡길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말이다.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틀림없는 사람, 믿을 만한 사람, 깨끗한 사람, 한다면 하는 사람, 지킨다면 지키는 사람 등등 이런 사람은 돈으로는 살 수 없다. 백만원은 저축했다가 찾아 쓰면 없어지기도 하고 잃을 수도 있고 재난을 만날 수도 있지만 몸에 지닌 공신력은 평생의 밑천이 된다. 백만원을 저금하려는 일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말 한마디로 백만원을 움직일 수 있는 공신력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 공신력이라는 뿌리는 신앙이라는 생수를 마셔야만 더 튼튼해진다.'
끝으로 임옥인 여사는 1994년 84세의 나이로 제3회 안드레선교대회에 참석, 안드레 명상이 문서선교의 중요한 사명을 다하고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글 : 김수호 <안드레명상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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