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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6호 (2003.10.1 발행) - 고뇌(苦惱)를 뚫고 환희(歡喜)로
  글쓴이 : 안드레명상 날짜 : 07-06-02 13:23     조회 :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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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苦惱)를 뚫고 환희(歡喜)로
2003. 10. 1 발행

 
음악가가 청각을 상실하는 것은 마치 화가가 갑자기 시력을 잃는것과 비유할 수 있다. 필자는 베토벤의 청각 상실에 대해 그의 음악을 접할 때 마다 악성(樂聖)으로서 과연 위대한 음악가 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과거 방송 재직시절 당시 주 1회씩 제작했던 다큐멘터리 <인간만세>의 배경 음악에 제일 많이 사용한 음악이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이었다. 그 다음 순서가 안익태의 코리아 환타지, 그리고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이었다. 다큐멘터리 <인간만세>에서 그 주인공이 처절한 절망의 늪에서 최후의 생명줄을 붙잡고 재기하는 장면에는 꼭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사용했다.
이 <인간만세>의 고정 나레이터(원고낭독)로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맹관영 아나운서는 이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등장할 때마다 스튜디오 안에서 입을 비쭉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그것은 아마 “당신은 베토벤의 음악이외에 다른 음악은 하나도 모르느냐”는 불평이었을 것이다.
<베토벤의 생애>를 쓴 로망롤랑은 자신이 인생을 사는 동안 심한 허무감을 느낄때마다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꺼져가는 삶의 불꽃이 다시 타오른다고 격찬했다 필자 역시 방송 때문에 베토벤의 음악을 자주 접하다 보니 자연히 그의 인생관과 특히 음악속에 숨겨진 고뇌와 비장함, 그리고 감동과 환희를 느끼게 되었다. 베토벤은 키도 작았고 얼굴도 볼품이 없는데다 가발까지 쓰고 다녀서 그에게 음악을 사사했던 하이든은 베토벤을 <몽고대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의 인품은 귀족사회에서 인정을 받아 명문가의 규수들이 그에게 사사를 받았고 그중에서도 테레제, 쥴리에타와는 뜨거운 연애를 했다. 특히 테레제와는 약혼까지 했으나 불행하게도 얼마후 파혼을 했으며, 이때부터 이미 베토벤의 청각 장애는 서서히 악화되고 있었다. 한편 베토벤은 아홉곡의 교향곡을 만들었지만 그 곡의 제목을 자신이 직접 붙인 것은 제3번 <영웅>과 6번 <전원>, 9번<합창>등 세곡 뿐이었다.
그런데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우리 나라와 일본에서만 <운명>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왜 <운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전문 음악인이 아닌 필자도 알 수 없다. 다소 근거가 될지는 모르지만 베토벤의 전기를 쓴 <안톤 신들러>가 어느날 베토벤이 제1악장 첫머리를 지적하면서 “운명의 문을 이렇게 두드린다” 라고 배경 설명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들러의 전기에서도 <운명>이란 제목은 없고 오직이라고만 썼을 뿐이다.
이 5번 교향곡은 비엔나에서 처음 연주되었을때는 베토벤이 직접 지휘를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특히 마지막 곡 <합창환상곡>에서는 연주중이던 오케스트라가 혼란에 빠져 베토벤은 고성을 지르면서 연주를 중단시키고 다시 처음부터 연주를 해서 청중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는데 이날 연주 실패는 사방에서 동원해온 오케스트라들이 베토벤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총연습도 두 번밖에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5번 교향곡이 파리에서 공연되었을 때는 그 웅장하고 환희에 찬 오케스트라의 모습에 감격을 억누르지 못한 어떤 군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제다! 황제만세”를 외쳤다고 해서 황제 교향곡이라고 불렀다.
여하튼 이 5번의 <운명>은 슬픔속에 낙망해 있는 사람이나 또한 절망에 처한 사람, 더 크게 표현해서 암흑에서 광명으로 인도해주는 베토벤 불멸의 작품이다. 베토벤이 이 5번 <운명>을 쓸때는 앞으로 자신의 귀가 영영 안들릴 것을 미리 예측하고 미래에 닥쳐올 잔인한 운명에 대결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베어있어서 후일의 음악가들이 이 곡을 <운명>이라고 불렀는지도 모른다.
베토벤이 독일의 본을 떠나 비엔나에서 35년을 사는 동안 거처를 옮긴 것이 79회다. 또한 이사를 해서 살던 집은 스물일곱집이였으며, 가는 곳마다 집 주인과 자주 싸워서 한 집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비엔나의 베토벤 유적지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하인리켄 슈타드>다. 귓병 치유 불가능의 판정을 받고 의사의 권고에 의해 이곳에서 휴양을 하면서 그래도 그는 청력의 회복을 기대했으나 허사였다. 결국 베토벤은 동생들과 그리고 연인들에게 유서를 썼다. 바로 그 유명한 <하인리켄 슈타드 유서> 때문에 그 후부터 이곳이 유명한 관광명소로 등장했다.
이곳 <하인리켄 슈타트>는 베토벤이 유서를 쓸 만큼 절망과 좌절을 안겨 주었는가 하면 그러나 그 절망을 뛰어 넘는 희망의 땅이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경쾌한 제2 교향곡이 이곳에서 작곡되었는데 아마도 자신의 재기를 구상한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학자들의 평으로는 1808년 <전원>을 작곡할때는 베토벤의 귀가 이미 완전히 멀어졌으며 새 소리도 못 들었다고 한다. 베토벤은 이곳의 아름다운 숲속을 산보하면서 “하나님! 나는 이곳 숲속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나무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를 수시로 드렸다고 베토벤의 음악 조수였으며, 후일 베토벤 전기를 쓴 신들러의 회고다.
베토벤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가 전부다. 그러나 가정교사로 일했던 주인 브로이닝의 도움과 발트시타인 백작의 원조, 그리고 본 대학의 피세르니히 교수와의 만남으로 본 대학 청강생이 되었다. 특히 정열적이고 감동적인 시나이더 교수의 강의가 베토벤의 인격 수양과 자유사상을 인도해 주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한편 베토벤의 음악 생애에 가장 분노를 느끼게 한 것은 잘 알려진데로 나폴레옹 1세에게 헌정 할려고 했던 3번 교향곡 <영웅>이다. 평소 나폴레옹을 사모했던 베토벤은 이 3번 교향곡이 완성되어 그 표지에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1세에게 헌정합니다> 라는 제목까지 부쳤으나 나폴레옹 1세가 젊은 나이에 갑자기 황제까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분개한 나머지 보나파르트, 즉 나폴레옹 1세의 이름을 지우고 <심포니아 에로이카>라는 제목을 적었다. 어떤 학자의 글에는 이때 베토벤이 분노를 참지 못해 작곡을 찢어버렸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필자가 과거 비엔나를 여행할 때 이 유명한 3번 <영웅> 악보(원본이 아닌 사진확대된 것>가 진열되었다는 에로이카 하우스를 못 본 것이 비엔나를 떠나는 날까지 아쉬움을 남겼다. 베토벤의 청각 상실로 인한 고통중에서도 가장 슬픈 이야기는 1824년 5월 7일 제 9번 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때다. 제2악장과 마지막 악장이 끝났을 때 수많은 청중이 일제히 일어나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이미 완전 귀머거리가 된 베토벤은 그 열광하는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멍청하게 서서 악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때 알토의 솔로이스트 웅거가 베토벤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청중쪽으로 돌려주어 열광하는 청중을 보게 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베토벤의 청각이 완전 상실된 것을 알게 된 청중들은 일제히 손수건을 꺼내 힘차게 흔들면서 눈물을 흘렸다. 음악 평론가들이 이 9번 교향곡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영원히 연주될 것이라고 격찬을 했는데 지금도 송년음악회가 열리는 곳에는 이 교향곡 9번 합창은 항상 연주되고 있다.
한편 베토벤은 자신의 청각상실의 괴로움은 그의 기도에서도 잘 나타나 있었다. “오 하나님, 참으로 기쁜 하루를!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제게 다시한번 베풀어 주십시오. 무척 오랫동안 참다운 기쁨의 그 그윽한 울림이 제게는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청각 장애의 그 괴로운 현실에서도 그의 작품 활동은 중단되지 않았으며 그가 겪는 슬픔과 고난은 작곡속에서 표현되어 더 빛난 곡들이 만들어졌다. 1801년 월광곡이라고 불리워지는 저 유명한 <비창 소나타>27번을 작곡하여 불멸의 연인 줄리에타에게 선사했고 1803년에는 제2 교향곡 알레그로를 비롯하여 엘리제를 위한(일명 테레제)제 4교향곡, 그리고 제3의 에로이카, 제5의 운명, 제6의 전원 등이 청각 장애 이후에 피를 말리는 고통 속에서 완성된 것이다. “하나님 내가 살아 가면서 죽음의 괴로움을 잊어버리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를 궁핍으로부터 구해 주십시오.” 베토벤은 독신으로 살아가면서도 그의 생활이 쪼달릴 때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염과 류마티즘, 그리고 청각 상실등 3중고의 고통속에서도 예술을 향한 그의 집념은 불멸의 성좌와 같이 사라지지 않았다. 1815년 베토벤은 엘데리 백작 부인에게 그 유명한 편지 <고뇌(苦惱)를 뚫고 환희(歡喜)로> 라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1827년 3월 26일 그의 나이 56세때 지병인 장염은 네 번의 수술도 아무 효과없이 그의 생명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쇼트 출판사 사장이 베토벤에게 선물로 보내온 유명한 마인츠산 포도주를 보자 “유감이다. 이것을 마시기에는...” 이말이 그가 생전에 마지막 남긴 말이다. 위대한 악성(樂聖)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던 날은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날의 일기를 연상케 했다.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갑자기 천둥소리와 번개가 쉴새없이 번쩍거렸다. 이때 베토벤은 사력을 다해 오른손을 들고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을 응시하다가, 그의 손이 내려짐과 동시에 숨을 거두었다.

글 : 김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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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명상 l 저자:김수호 l 관리자이메일주소 : songpo83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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